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니 라미레즈 (문단 편집)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과 그 이후 ===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Los+Angeles+Dodgers+v+San+Francisco+Giants+74s7WWkxWBwl.jpg]] 매니 라미레즈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2008년 6월 5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팀 동료 [[케빈 유킬리스]]와 다투고 7월에는 라미레즈가 직접적으로 레드삭스를 비난하는등 결국 매니는 7월 31일, [[보스턴 레드삭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LA 다저스]]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게된다.[* 대신 레드삭스가 매니 대신 얻어온 좌익수는 [[제이슨 베이]]였다.] 그런데 사람이 달라졌다. 강력한 파이팅으로 라미레즈는 다저스의 팀 분위기를 이끌었다. 또한 자신도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다저스 이적 후 타율 .396 17홈런 53타점 ops 1.232였다. 참고로 불과 '''53경기'''동안의 기록이다.] 다저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고, 매니 이적 전까지 5할에도 못미치던 성적을 기록하던 다저스는 후반기 대질주를 보여주면서 [[2008 NLCS|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한다. 다저스 프런트는 이에 감복하여 매니와 2년 $45M의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7일 '''약물검사에서 배란 억제제 사용이 걸리며 50경기 출장 정지를 받으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 이후 7월에 뉴욕 타임즈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3년 비공개 도핑테스트에서 걸린 104명의 메이저리거 중 매니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고 한다.] 50경기 출장 정지후 돌아왔지만 이후, 예전만큼의 기량은 보이지 못했고 2010년에는 시즌 도중,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으나 또다시 부진했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로 시장에 나온 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 레드삭스시절 팀 동료였던 [[조니 데이먼|동굴맨]]과 한 팀에서 뛰게 되었지만 '''또다시 약물검사에서 걸렸다.''' 첫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자 항소를 했는데, 변호인 측에서 참관한 가운데 실시한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자 [[데꿀멍]]했다. 그에 따라 '''100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라미레즈는 결국 2011년 4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둘러 은퇴한다.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희망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아내 폭행으로 다시 신문기사에 이름이 오르는 등 복귀는 영영 물건너갔다. [[파일:attachment/매니 라미레즈/dd.jpg]] 그리고 최근 사진을 보면 한때, 우리가 알던 그 매니 라미레즈가 맞나 싶을정도로 말라깽이가 되어있다. 본인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복귀하지 못하면 [[일본프로야구]] 진출까지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2011년 오프시즌 플로리다에서 일본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입단 테스트까지 참가했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미 기량이 떨어진 매니를 잡으려는 팀이 드물며 설혹 복귀를 한다 하더라도 100경기 출장 정지부터 채워야 하기때문에 현실적으로 매니의 복귀는 불가능에 가까울 줄 알았는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그가 한 시즌을 쉬었음을 감안하여 출장 정지 경기 수를 50경기로 경감해 줬고, 2월 20일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를 '''연봉 50만 달러'''에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애슬레틱스에선 매니의 자리가 없었는지 징계가 풀린이후에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했고 매니가 구단에 FA를 요청하면서 결국 방출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